제주도 이야기

안개비 내리는 새벽, 영실탐방로를 걷다

Chipmunk1 2026. 6. 13. 08:48

2026. 06. 08.

지난 월요일 새벽, 윗세오름을 가기 위해 영실탐방로에 올랐습니다.

평소라면 오전 5시에 문을 열었을 탐방로가 이날은 30분 정도 일찍 개방되어 생각보다 산행을 일찍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비가 올 듯 말 듯 안개비가 살짝 내리는 새벽길. 5시를 조금 넘길 때까지는 헤드랜턴 불빛의 도움을 받으며 조용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새벽 4시 49분, 산행의 시작을 알리는 영실 표지석입니다. 촉촉하게 젖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걸음을 시작합니다.

날이 조금씩 밝아오면서 능선 주변으로 낮게 깔린 안개와 구름이 눈에 들어옵니다. 녹음이 한창 짙어지는 시기라 영실의 랜드마크인 병풍바위의 기암괴석은 거의 녹색에 뒤덮여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숨 가쁘게 오르며 마주한 표지석들입니다. 거친 바위틈마다 파릇하게 돋아난 풀들이 한라산의 완연한 초여름을 보여줍니다.

오전 6시를 넘기며 시야가 트이는 능선에 섰습니다. 발아래로 펼쳐진 짙푸른 숲과 저 멀리 구름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서귀포의 풍광이 가슴을 시원하게 해 줍니다. 부지런히 발걸음을 재촉한 보람이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숲이 깊어져 병풍바위는 숨었지만, 능선에 우뚝 선 오백나한과 특유의 자태를 지닌 고망난 바위가 반갑게 맞아주었습니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솟아오른 기암괴석의 실루엣은 언제 보아도 늘 묵직한 감동을 줍니다.

화창하게 개인 날은 아니었지만, 잔잔한 안개비와 짙푸른 녹음이 어우러져 오직 이 계절 새벽부터 이른 아침에만 만날 수 있는 한라산의 깊은 멋을 온전히 느낀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