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암산 자락의 아늑한 품에 안긴 백양사를 찾았습니다.

이른 봄날, 은은한 향기와 고결한 자태로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던 고불매(古佛梅)의 화려한 분홍빛 꽃 잔치는 이제 볼 수 없지만, 그 아쉬움도 잠시뿐입니다. 꽃이 떠난 그 자리에는 자연의 부지런한 약속처럼 푸르고 실한 매실들이 가지가 무겁도록 주렁주렁 매달려 있습니다.

고즈넉한 산사의 기와지붕과 화려한 단청을 배경으로, 오월의 싱그러운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초록 매실들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겉면에 보송보송하게 돋아난 고운 솜털과 단단하게 차오른 모양새에서 대자연의 강인한 생명력과 계절의 깊어짐이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꽃은 피어날 때만 아름다운 줄 알았는데, 이렇게 묵묵히 결실을 맺어가는 초록의 시간 역시 그에 못지않게 아름답고 대견합니다. 화려함 뒤에 찾아오는 이 담백하고 풍성한 풍경 덕분에, 마음속까지 싱그러운 초록빛으로 가득 채워지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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