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월의 따스한 햇살이 가득한 전주수목원 장미원, 그 수많은 꽃들 사이에서 유독 맑고 고아한 자태로 눈길을 사로잡는 주인공이 있습니다. 영국 장미의 거장 데이비드 오스틴이 탄생시킨 명작, 바로 ‘그레이스(Grace)’입니다.



그레이스는 이름 그대로 우아함과 기품이 무엇인지를 온몸으로 보여주는 장미입니다. 정성스레 빚어낸 하트 모양의 프레임 속에 담긴 꽃들을 보면, 봉오리가 맺히는 순간부터 활짝 피어나기까지의 경이로운 여정이 한눈에 펼쳐집니다.

초록빛 꽃받침을 밀어내며 수줍게 고개를 내민 어린 봉오리는 짙은 살구색 머금은 분홍빛을 띱니다. 마치 부끄러움에 붉어진 소녀의 뺨처럼 싱그럽고 사랑스럽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겹겹이 쌓인 꽃잎이 중심부로부터 차례로 열리면, 그레이스만의 독특한 매력이 극에 달합니다.

꽃의 안쪽은 따스하고 풍요로운 황금빛 살구색(Apricot)으로 짙게 물들어 있고,
바깥쪽 꽃잎으로 갈수록 햇살에 옅어진 듯 부드러운 연분홍과 크림빛으로 세련되게 바래갑니다.
마치 하나의 꽃 안에서 봄의 온기와 가을의 깊이가 공존하는 듯한 절묘한 빛깔의 그라데이션입니다.

그레이스의 가장 큰 특징은 장미이면서도 마치 잘 가꾸어진 다알리아나 국화를 연상시키는 정교한 화형에 있습니다.

꽃잎의 끝부분이 살짝 바깥으로 말리며 뾰족하게 각이 지는데, 이 호선들이 층층이 겹쳐지면서 완벽한 대칭과 입체감을 만들어냅니다. 흐트러짐 없이 단정하게 배열된 수십 장의 꽃잎들은 자연이 정성스레 접어놓은 한 권의 아름다운 시집과도 같습니다. 푸른 잎사귀의 호위를 받으며 무리 지어 피어난 장미 덤불은 그 자체로 장미원의 거대한 수채화가 됩니다.

'초록의 바다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살구빛 고운 노을.
한 잎은 수줍은 기억으로,
또 한 잎은 눈부신 사랑으로,
오월의 정원에 우아한 시를 쓴다.'

완연한 봄날, 전주수목원의 맑은 공기 속에서 카메라 렌즈에 담긴 그레이스의 자태는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붙잡아 두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꽃잎 마다 아침 이슬처럼 맑은 생기가 가득 차오르는, 참으로 아름다운 오월의 기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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