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Chipmunk1 2026. 1. 19. 04:42

2026. 01. 14.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尊德亭)은 그 화려한 건축미와 정조 대왕의 서사가 담긴, 후원 내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정자 중 하나입니다.

존덕정은 1644년(인조 22년)에 세워진 육각형 정자입니다. 가장 큰 특징은 지붕이 두 겹이라는 점입니다. 본체 지붕 아래에 눈썹지붕처럼 또 하나의 지붕을 덧대었는데, 이를 지탱하기 위해 가느다란 기둥 24개가 정자를 호위하듯 둘러싸고 있습니다. 덕분에 궁궐의 정자 중에서도 가장 웅장하고 기품 있는 외관을 자랑합니다.

존덕정 내부 천장을 보면 정조 대왕이 직접 지은 "세상의 모든 시냇물(만천)에 달이 비치지만, 하늘에 떠 있는 달은 오직 하나뿐이다. 그 달이 바로 나(왕)이다."라는 의미가 담겨있는 '만천명월주인옹자서(萬川明月主人翁自序)'라는 글이 새겨진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당시 정조는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백성들에게 공평한 정치를 펼치겠다는 의지를 보였습니다. 신하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만백성의 어버이가 되겠다는 당당한 포부를 이 정자에 기록해 둔 것입니다.

존덕정 천장 중앙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황룡과 청룡 두 마리가 그려져 있습니다. 이는 왕권의 엄숙함과 권위를 상징하며, 정조가 이곳에 머물며 신하들과 학문을 논할 때 왕의 존재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치이기도 했습니다.

존덕정 바로 옆에는 수령이 수백 년 된 거대한 은행나무가 서 있습니다.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물들어 존덕정의 화려한 단청과 어우러지고,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에 눈꽃이 피어 정자와 함께 고고한 자태를 뽐냅니다.

존덕정 앞에는 반도지(부채꼴 모양의 연못)가 있는데, 반도지(半島池)는 그 이름처럼 연못의 모양이 한반도 지형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입니다.

원래는 세 개의 작은 연못으로 나뉘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하나의 큰 연못으로 합쳐지면서 지금의 한반도 모양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집"이란 뜻의 폄우사 (砭愚榭)는 단아한 모습으로 존덕정 바로 위에 서 있습니다.
'폄(砭)'은 돌침을 놓는다는 뜻이고, '우(愚)'는 어리석음을 뜻합니다. 즉, "어리석은 자에게 침을 놓아 경계한다"는 엄격하고도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정조 대왕과 효명세자가 특히 사랑했던 곳으로, 이곳에서 독서를 하거나 사색하며 스스로를 수양했다고 전해집니다.
폄우사는 일반적인 정자와 달리 온돌방이 딸린 평범한 가옥의 형태를 띠고 있어, 화려함보다는 실용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그리고, 하늘에 맞닿은 고요한 쉼터인 능허정(凌虛亭)이 창덕궁 후원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능허(凌虛)'라는 이름처럼 속세를 벗어나 허공에 높이 솟아 있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아담한 사각형 정자로, 화려함보다는 자연과 하나 되는 단출한 멋을 보여줍니다.

정조 대왕은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눈 내린 후원의 저녁 풍경을 '능허모설(凌虛暮雪)'이라 부르며 상림십경 중 마지막 절경으로 꼽았습니다.

그리고, 반도지 언덕에서 내려다 보이는 부채 모양의 관람정이 존덕정 구역 풍경의 백미라 할 수 있습니다.

관람정(觀纜亭)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부채꼴 모양의 평면을 가진 매우 독특하고 아름다운 정자입니다. '관람(觀纜)'이라는 이름은 '닻줄을 구경한다'는 뜻으로, 배를 타고 노니는 풍경을 감상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 펼쳐진 부채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에 맞춰 추녀마루가 6개로 뻗어 나가는 곡선미가 일품입니다.

반도지(한반도 모양의 연못) 물가에 발을 담그고 있는 듯한 형상으로 세워져 있어, 정자 안에서 밖을 내다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기분을 줍니다.

주변의 숲과 연못, 그리고 근처의 승재정, 존덕정, 폄우사와 어우러져 후원에서도 가장 서정적인 풍경을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눈 덮인 연못가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관람정의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습니다. 겨울의 관람정은 화려한 단청과 하얀 눈이 대비되어 더욱 고즈넉한 멋을 자아냅니다.

창덕궁 후원 반도지(한반도 모양 연못)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작고 예쁜 정자인 승재정(勝宰亭)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반도지 남쪽 언덕 위 (관람정 맞은편 높은 곳) 승재정의 '승(勝)'은 빼어난 경치를, '재(宰)'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빼어난 경치를 마음껏 감상하고 즐긴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정면 1칸, 측면 1칸의 아주 아담한 사각형 정자입니다. 지붕 끝이 하늘을 향해 날렵하게 치켜 올라간 모습이 매우 경쾌하고 화사한 느낌을 줍니다.
반도지 주변 정자들(관람정, 존덕정)과 함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완성합니다. 특히 관람정에서 언덕 위를 바라볼 때 나무 사이로 보이는 승재정의 모습이 일품입니다.

승재정에 서면 아래로 반도지 연못과 부채꼴 모양의 관람정이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왕이 연못가의 풍경을 입체적으로 즐기기 위해 일부러 지대가 높은 이곳에 정자를 세운 듯 합니다.

정리하자면, 존덕정은 이 구역에서 가장 키가 큰 정자로, 왕이 휴식을 취하면서도 자신의 정치 철학을 되새기던 아주 특별한 공간이었습니다.

서울의 5대 궁궐 중 창덕궁이 유일하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이유는 바로 '자연과의 조화' 때문입니다.

인위적으로 산을 깎거나 지형을 바꾸지 않고, 지형의 곡선을 그대로 살려 건물을 배치한 점이 한국 전통 조경의 정수로 인정받았습니다.

특히 후원은 왕실의 정원이면서도 자연의 숲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가장 한국적인 궁궐"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