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창덕궁 후원 부용지의 겨울풍경

Chipmunk1 2026. 1. 15. 00:48

2026. 01. 14.

엊그제 내린 눈 속에 갇힌 창덕궁 후원의 부용지가 보고픈 마음에, 새벽에 길을 나서, 창덕궁이 문을 열기를 이십여분 동안, 영하 십도 이하의 매서운 날씨에 발을 동동이며 기다렸다가, 오전 9시에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이 보수공사 중인지라, 돈화문 왼쪽 담을 따라 임시 정문을 통과하여, 한 시간을 기다리다 후원 첫회차인 오전 10시 정각에 드디어 후원으로 진입합니다.

창덕궁 후원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조선 시대 왕들이 가장 사랑했던 정원 중 하나인 부용지에는 여러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중 첫 번째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천원지방, 天圓地方)라는 흥미로운 이야기입니다.

부용지는 네모난 연못 가운데에 둥근 섬이 떠 있는 독특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조상들의 우주관을 반영한 것이라고 합니다. 네모난 연못은 땅을, 그 안의 둥근 섬은 하늘을 상징하며, 인간(임금)이 그 사이에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유교적 이상을 담고 있다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 정조 임금의 ‘벌칙 귀양’ 이야기입니다.
정조 임금은 이곳 부용지에서 신하들과 자주 어울렸습니다. 특히 규장각 신하들을 데리고 낚시를 하거나 시 짓기 대회를 열곤 했는데요.
정조는 시를 제시간에 짓지 못하는 신하에게 아주 특별한 벌을 내렸습니다. 바로 부용지 한가운데에 있는 저 작은 섬으로 ‘깜짝 귀양’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신하들은 배를 타고 섬으로 들어가 시를 다 지을 때까지 나오지 못했고, 정조는 그 모습을 보며 껄껄 웃었다고 합니다. 점잖은 선비들에게는 꽤나 부끄러우면서도 즐거운 추억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세 번째 이야기는 물고기와 물의 관계 (어수문, 魚水門)에 관한 것입니다.
연못 북쪽 언덕 위에는 왕실 도서관이었던 주합루와 그 정문인 어수문이 있습니다. ‘어수(魚水)’는 '물고기와 물'이라는 뜻으로, “임금은 물이고 신하는 물고기이니, 물고기가 물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깊은 정치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합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존중하고 소통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뜻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꽃을 닮은 정자, 부용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사진 왼쪽, 화려한 정자가 바로 부용정(芙蓉亭)입니다.
'부용'은 활짝 핀 연꽃을 뜻하며, 정자의 평면 모양 자체가 '열십자(十)' 형태를 띠고 있어 마치 연못 위에 연꽃이 핀 듯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정자의 두 기둥이 연못 속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은 한국 정자 건축의 극치로 꼽힙니다.
눈 덮인 부용지의 고즈넉한 풍경 속에는 이처럼 임금과 신하가 학문을 논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게 소통하던 조선 시대의 따뜻한 이야기가 숨어 있습니다.

❄️ 부용지에 내린 겨울 풍경

네모난 연못은 땅의 마음을 품고
둥근 섬 하나 하늘의 뜻을 띄웠네.
어수문(魚水門) 계단 위로 눈꽃이 쌓일 때
물고기와 물의 약속은 얼음 아래 깊어간다.

부용정 두 발은 차가운 물속에 잠겨도
기둥마다 새겨진 선비의 기개는 푸르고,
시 한 수 짓지 못한 신하의 멋쩍은 웃음소리
휘어진 소나무 가지 끝에 고드름으로 맺혔네.

천 년의 숲이 숨을 죽인 겨울 아침
주합루 높은 마루에 옛 임금의 눈길 머무니,
하얀 비단이 된 못 위로 붓끝이 지나가듯
오늘도 후원의 겨울은 한 폭의 시가 된다.

'겨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7) 2026.01.19
경복궁 향원정의 겨울풍경  (4) 2026.01.17
혹한기 왜가리 삶의 현장  (8) 2026.01.08
탄천의 비오리  (12) 2025.02.15
탄천의 미국쇠오리  (12) 2025.0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