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01. 14.

경복궁 향원정의 겨울 풍경이 참 고즈넉하고 아름답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향원지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을 주네요.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을 가진 향원정(香遠亭)은 그 이름만큼이나 깊은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왕의 휴식처였던 향원정은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경회루와 달리, 고종 황제와 왕실 가족들이 조용히 산책하며 휴식을 취하던 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이 연못은 1890년대 초반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 파티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여름용 정자 같지만, 최근 보수 공사를 통해 향원정 바닥에 온돌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덕분에 왕들은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앉아 눈 덮인 북악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겠지싶습니다.

향원정 뒤편으로 보이는 북악산(백악산)의 능선과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이루는 비례감이 정말 일품입니다. 이 구도는 예부터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다리 '취향교'는 원래 북쪽(건청궁 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부서진 후 남쪽에 잘못 복원되었다가 2021년이 되어서야 제자리인 북쪽으로 다시 옮겨졌다고합니다.

향원지 북쪽은 188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등의 불을 밝힌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향원지의 물을 끌어다 썼는데, 물 온도가 높아져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바람에 '증어(蒸魚, 찐 생선)'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붙기도 했답니다.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돌과 화려했던 역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향원(香遠), 얼음 위에 핀 꽃
푸른 하늘 맞닿은 백악산 아래
천 년의 숨결이 차갑게 멎었나니
비단 물결 출렁이던 향원지(香遠池)는
이제 하얀 침묵의 이불을 덮었네.
육각의 추녀 끝엔 바람마저 얼어붙고
왕의 온기 머물던 온돌 바닥 아래
식지 않은 그리움만 불씨로 남았는데
정자는 섬이 되어 설한(雪寒)을 견디는구나.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아진다 하였던가
얼음 아래 흐르는 시린 물소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봄을 빚어내어
머지않아 버들가지마다 연두 빛을 틔우리.
홀로 고고한 저 자태여,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난
조선(朝鮮)의 차가운 꽃 한 송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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