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경복궁 향원정의 겨울풍경

Chipmunk1 2026. 1. 17. 05:45

2026. 01. 14.

경복궁 향원정의 겨울 풍경이 참 고즈넉하고 아름답습니다. 꽁꽁 얼어붙은 향원지 위에 하얀 눈이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평화로움을 주네요.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을 가진 향원정(香遠亭)은 그 이름만큼이나 깊은 역사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입니다.

​왕의 휴식처였던 향원정은 공식적인 행사를 치르던 경회루와 달리, 고종 황제와 왕실 가족들이 조용히 산책하며 휴식을 취하던 사적인 공간이었습니다. 겨울철 꽁꽁 얼어붙은 이 연못은 1890년대 초반 우리나라 최초의 스케이트 파티가 열렸던 역사적인 장소이기도 합니다.

​겉으로 보기엔 여름용 정자 같지만, 최근 보수 공사를 통해 향원정 바닥에 온돌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덕분에 왕들은 추운 겨울에도 따뜻하게 앉아 눈 덮인 북악산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겠지싶습니다.

​향원정 뒤편으로 보이는 북악산(백악산)의 능선과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이루는 비례감이 정말 일품입니다. 이 구도는 예부터 경복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사진의 오른쪽으로 살짝 보이는 다리 '취향교'는 원래 북쪽(건청궁 쪽)에 있었으나, 한국전쟁 때 부서진 후 남쪽에 잘못 복원되었다가 2021년이 되어서야 제자리인 북쪽으로 다시 옮겨졌다고합니다.

​향원지 북쪽은 1887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전등의 불을 밝힌 곳이기도 합니다. 당시 발전기를 돌리기 위해 향원지의 물을 끌어다 썼는데, 물 온도가 높아져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바람에 '증어(蒸魚, 찐 생선)'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붙기도 했답니다.
​차가운 얼음 속에 갇힌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돌과 화려했던 역사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향원(香遠), 얼음 위에 핀 꽃

​푸른 하늘 맞닿은 백악산 아래
천 년의 숨결이 차갑게 멎었나니
비단 물결 출렁이던 향원지(香遠池)는
이제 하얀 침묵의 이불을 덮었네.

​육각의 추녀 끝엔 바람마저 얼어붙고
왕의 온기 머물던 온돌 바닥 아래
식지 않은 그리움만 불씨로 남았는데
정자는 섬이 되어 설한(雪寒)을 견디는구나.

​향기는 멀리 갈수록 맑아진다 하였던가
얼음 아래 흐르는 시린 물소리
보이지 않는 곳에서 봄을 빚어내어
머지않아 버들가지마다 연두 빛을 틔우리.

​홀로 고고한 저 자태여,
겨울의 한복판에서 가장 뜨겁게 피어난
조선(朝鮮)의 차가운 꽃 한 송이로다.

'겨울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푸른 새벽의 위로  (10) 2026.01.19
창덕궁 후원의 존덕정  (7) 2026.01.19
창덕궁 후원 부용지의 겨울풍경  (14) 2026.01.15
혹한기 왜가리 삶의 현장  (8) 2026.01.08
탄천의 비오리  (12) 2025.0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