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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보름달과의 작별인사

병오년 첫 보름인 정월 대보름에 개기월식과 함께 찾아왔던 보름달을 진정한 봄을 영접하기 위해아쉬운 마음으로 떠나보냅니다.칠흑 같은 어둠의 끝자락,홀로 정갈하게 깨어난 은빛 얼굴새벽을 여는 첫 번째 기도가 시작됩니다.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보니수만 년의 시간을 품은 거친 표면마저오늘은 비단결처럼 부드러운 빛을 냅니다.온 세대의 소원을 묵묵히 들어주느라밤새 잠 한숨 못 자고 지켰을 그 자리,여전히 둥글고 넉넉한 모습입니다.이제 서쪽 하늘로 기우는 걸음마저성급하지 않게, 고요한 법도를 지키며달은 천천히 뒷모습을 준비합니다.창백한 새벽빛이 스며들수록달의 가슴속 무늬는 더욱 선명해지고우리의 아쉬움도 그만큼 짙어만 갑니다.비워내야 다시 채울 수 있음을스스로 몸을 낮추어 보여주는 성자처럼달은 이제 먼 길을 떠날 채비..

봄 이야기 2026.03.04

​봉정사 만세루 담장 아래서 맺은 봄의 붉은 인연

천년 사찰의 고요가 머무는 문턱만세루(萬歲樓) 거친 기둥을 마주하기 전오른쪽 외곽 뜰, 낮은 담장 발치에누가 이토록 시리도록 뜨거운 고결(高潔)을 심었는가.엘리자베스 여왕이 "가장 한국적인 아름다움"이라 찬탄하며천천히 보폭을 맞추던 그 고즈넉한 길목,바랜 단청은 세월 속에 제 빛을 잃어 무채색인데담장 아래 홀로 깨어난 저 충실(忠實)한 홍매화는얼어붙은 산사의 풍경소리 받아 적으며꽃잎마다 붉은 사연 꾹꾹 눌러 담았으리.대웅전으로 향하던 바쁜 발길 잠시 멈춘 자리인내(忍耐)의 끝에서 터진 향기가 죽비처럼 내려세상 밖 소란했던 마음의 먼지를 씻어내고비로소 결백(潔白)한 봄의 얼굴을 마주하게 하네.늙은 나무는 비우는 법을 몸소 보이고꽃은 피어나 찰나의 눈부심을 증명하니만세루 담장 아래, 이 발길 머무는 자리가오..

봄 이야기 2026.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