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소쇄원 광풍각을 바라보는 참나리의 사연

Chipmunk1 2026. 8. 11. 11:00

2026. 07. 30.

여름날 아침, 소쇄원의 녹음 속을 걷다 광풍각(光風閣) 앞 계곡가에서 주홍빛 참나리 한 송이와 눈이 맞닿았습니다. '비 온 뒤 해가 뜨며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이라는 뜻을 품은 광풍각은 스승 조광조의 죽음 이후 세상의 정쟁을 뒤로하고 자연에 은거했던 양산보 선생의 고결한 지조가 서린 정자인데, 그 광풍각이 내려다보는 계곡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주홍빛 꽃잎을 뒤로 넘긴 채 정자를 다소곳이 바라보는 참나리의 모습이 자못 애틋하고도 기품이 넘칩니다.

'순결'과 '자존심', 그리고 '변함없는 사랑'이라는 꽃말을 지닌 참나리는 인위적인 조경 없이 자연 그대로 피어나, 마치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단심(丹心)으로 광풍각의 맑은 바람을 묵묵히 사모하는 듯합니다.

참나리의 사연

풍각 고즈넉한 기둥 너머  
계곡 물가 바위틈에 피어난 참나리.  

검은 점 콕콕 박힌 주홍빛 꽃잎 젖히고  
너는 무슨 사연이 그리도 깊어  
물소리 넘어 정자를 조용히 건너다보느냐.  

비 개인 뒤 불어오는 맑은 바람 한 줄기에  
슬며시 고개 숙여 인사하는 모습은  
옛 선비의 고결한 정취를 사모함이라.  

여름의 한가운데, 소쇄원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와 광풍각의 기와 선, 그리고 참나리의 주홍빛 고백이 어우러져 한 편의 기막힌 진경산수화를 완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