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마철 궂은비가 내리는 동안에는 통 보이지 않더니, 구름 사이로 아침 햇살이 반짝 비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꽃잎을 열어젖힙니다. 초록빛 가득한 정평천 산책길 변에 어느새 선명한 주황빛 등불 하나가 환하게 켜졌습니다.
빗물을 털어내고 활짝 기지개를 켠 여섯 갈래의 꽃잎, 그리고 그 위에 새겨진 범부채 특유의 짙은 얼룩무늬가 아침 빛을 받아 유난히 싱그럽고 당당해 보입니다.

그 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자연이 만들어낸 흥미로운 순서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제 막 차례를 기다리며 붓끝처럼 솟아오른 수줍은 꽃봉오리들, 그리고 먼저 피어나 소임을 다하고 나선형으로 돌돌 말려 단정하게 퇴장하는 꽃의 뒷모습까지. 시원하게 흘러가는 정평천 물소리를 배경 삼아, 초록 세상 속에서 유독 도드라지는 범부채의 몸짓은 참 기특하고도 아름답습니다.

비바람에 웅크리고 있다가도 짧은 햇살 한 자락에 이토록 찬란하게 피어나는 꽃을 보며, 삶의 흐림 뒤에 찾아올 반짝이는 순간들을 기대하게 됩니다.

오늘 산책길에서 마주한 이 반가운 주황빛 에너지가 마음 한구석에 잔잔한 생기를 가득 불어넣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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