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새 창밖을 두드리던 빗소리가 잔잔한 여운으로 가라앉은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유난히 달게 내리던 밤비는 계절의 끄트머리를 지나며 짙어지던 초록에 맑은 숨통을 틔워준 모양이다. 세상이 온통 세수를 마친 듯 깨끗하고 선명하다.

물기를 머금은 싱그러운 풀 내음을 따라 걷다, 문득 발걸음이 멈추었다. 그곳에 오월의 여왕이 서 있었다. 빗속의 장미였다.

햇살 아래서 도도하게 빛나던 평소의 모습과는 달랐다. 밤새 내린 비를 온몸으로 받아낸 장미는 낮고 겸손하게 고개를 숙인 채, 꽃잎마다 투명한 빗방울을 보석처럼 알알이 얹고 있었다.

한 송이 장미 안에서 어떻게 이토록 다채로운 빛깔이 흘러나오는지. 수줍은 노란 살구빛으로 시작해 가장자리로 갈수록 짙어지는 분홍과 붉은빛의 그라데이션은, 마치 자연이 밤새 정성 들여 칠해놓은 수채화 같다.

가지마다 송골송골 맺힌 빗방울 속에는 오월의 푸른 풍경과, 비 갠 아침의 고요함이 그대로 투영되어 있다.

금방이라도 툭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그 투명한 눈물방울들이 무겁기보다는, 오히려 치열했던 봄날을 무사히 보내고 맞이하는 훈장처럼 보였다.

화려하게 만개한 꽃송이 곁에는 이제 막 빗물을 마시며 수줍게 고개를 내민 어린 봉오리가 함께 숨 쉬고 있다. 지는 것과 피어나는 것이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 모습이 담담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준다.

비가 내린 뒤의 계절은 한 걸음 더 성숙해질 것이다. 장미 꽃잎에 고인 빗방울을 보며, 내 마음속에 남아있던 마른 먼지들도 깨끗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위로를 받는다.

다가오는 유월의 길목, 자연이 소리 없이 건넨 이 촉촉한 선물을 마음에 품고 오늘 하루도 담담하게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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