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안동 화천서원과 부용대의 길목에서, 비석위에 새겨진 역사와 불두화 환한 얼굴이 안부를 묻다

Chipmunk1 2026. 5. 7. 00:31

안동의 깊은 품, 화천서원(花川書院)으로 향하는 부용대 입구에 서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비석들이 나그네를 맞이합니다.

겸암 류운룡 선생의 학덕과 자취를 기리는 기념비들은 수백 년의 비바람을 견디며 그 자리에 묵직하게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거북 좌대 위에 우뚝 솟은 비신은 차가운 돌의 몸을 빌려 잊히지 않아야 할 역사를 묵묵히 증언합니다.

그 엄숙한 석비 곁을 마치 감싸 안듯 서 있는 존재가 있으니, 바로 환하게 피어난 불두화(佛頭花)지요.

연둣빛에서 순백으로 익어가는 불두화 송이들은 촘촘히 엉겨 붙어 풍성한 꽃망울을 이룹니다. 부처의 머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이 꽃은, 화려한 향기로 유혹하기보다 담백하고 깨끗한 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먼저 정화시킵니다.

비석과 꽃, 이 이질적인 둘의 만남이 유독 아름다운 이유는 무엇일까요. 단단하고 변함없는 '역사'라는 돌 위에, 매년 새로 피어나 안부를 묻는 '생명'이라는 꽃이 얹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류운룡 선생이 평생 지켜온 선비의 기개가 비석의 뼈대라면, 그가 세상을 향해 베풀고자 했던 은혜로운 마음은 이 환한 불두화의 미소를 닮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꽃은 비석을 외롭지 않게 보듬고, 비석은 꽃의 환함을 더욱 돋보이게 합니다. 담백하면서도 눈에 띄는 그 조화로움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경계 없이 섞입니다. 뷰파인더 너머로 보이는 이 풍경은 단순한 정물(靜物)이 아니라, 시대를 건너뛰어 전해지는 따뜻한 위로이지 싶습니다.

길가에 핀 불두화 한 송이가 서원과 부용대의 고즈넉한 공기를 깨우듯, 우리네 삶도 묵직한 책임감 곁에 가끔은 이런 환한 꽃 한 송이 피워낼 여유가 있기를 바라봅니다. 부용대 오름길 초입에 있는 화천서원의 뜰에서 만난 이 담백한 조화가 오늘 하루를 살아갈 맑은 기운이 되어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