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장산의 기운이 서북으로 굽이쳐 흐르다 깎아지른 듯한 서래봉 암벽 아래 멈추어 섭니다.
그 장엄한 바위 산자락이 자비로운 부모의 품처럼 포근히 감싸 안은 명당, 그곳에 벽련암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의 법통은 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백제 의자왕 20년(660년), 환해선사가 창건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본래 이름은 '내장사'였으니, 지금의 내장사 터보다 훨씬 높은 이곳에 먼저 법등을 밝히고 산의 이름을 얻은 셈입니다.
이곳이야말로 내장산 신앙의 뿌리이자 모태라 할 수 있습니다.

오랜 시간 이곳은 하얀 연꽃처럼 고결한 수행의 정토를 꿈꾸던 선인들의 마음을 담아 '백련암(白蓮庵)'이라 불리었습니다.
특히 조선의 대문장가이자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과의 인연은 이곳의 격조를 더욱 높여줍니다.
선생이 이곳에 머물며 남겼던 '백련암'이라는 친필 현판은 전란의 불길 속에 안타깝게 사라졌지만, 그 묵직한 필치와 고고한 정신만큼은 서래봉의 바위틈마다 여전히 배어 있는 듯합니다.


세월의 풍파 속에 절 이름은 백(白)에서 벽(碧)으로 옷을 갈아입어 오늘날 '벽련암(碧蓮庵)'이 되었습니다.
푸른 연꽃이라는 그 이름처럼, 서래봉의 잿빛 바위와 사시사철 푸른 대숲이 어우러진 풍광은 보는 이의 마음속 번뇌를 씻어내기에 충분합니다.
비록 옛 전각들은 소실되었으나, 다시 세워진 대웅전과 벽련선원의 단청은 여전히 추사체의 기개처럼 당당하고 힘이 넘칩니다.

누각 앞에 서서 저 멀리 내장산의 첩첩산중을 바라봅니다.
바위 위에 가만히 앉아 계신 불상과 그 아래 맑은 연못은 백련암이 품은 고요의 정점입니다.
억겁의 시간을 견뎌온 서래봉의 암벽이 배경이 되어주니, 사찰의 모든 풍경이 그대로 하나의 선(禪)이 됩니다.

1,3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름을 바꾸고 모습을 달리하면서도 묵묵히 제 자리를 지켜온 이 터전은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겉모습은 변할지언정 그 뿌리 깊은 정신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요.
서래봉의 정기를 받으며 걷는 그 길 끝에서 만난 벽련암은, 오늘도 마음속에 푸른 연꽃 한 송이를 고요히 피워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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