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폭우가 지나가는 길목,
투명한 줄기로 내리 꽂히는 빗줄기 속에서
배롱나무는 두 개의 마음을 피워내고 있었다.

하나는
비에 젖어 더욱 뜨겁게 불타오르는
정열의 붉은빛,
빗방울을 모조리 흡수하며
절정의 여름을 온몸으로 외치는 소리.

또 하나는
빗물 아래 한층 더 차분하게 가라앉은
은은한 보랏빛,
빗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조용히 수줍음을 머금은 침묵의 고백.

얇은 프릴 모양 꽃잎마다
동글동글 맺힌 물방울은
여름이 꽃에게 남긴 작은 보석들.

굵은 장대비도
꽃가지 끝에 매달린 그 어여쁨을
차마 꺾지 못하고,
촉촉한 그리움이 되어
대지 위로 번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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