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양사 천진암으로 향하는 생태탐방로를 걷다 보면, 발치 아래 나직이 엎드린 보랏빛 귀객(貴客)을 마주하게 됩니다. 이른 봄, 숲의 깨어남을 알리는 얼레지입니다.









녀석을 제대로 마주하기 위해서는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 굳게 닫혀 있던 꽃잎은, 따스한 햇살이 숲 깊숙이 스며들고 나서야 비로소 그 속내를 보여줍니다.



얼레지는 그 독특한 생김새만큼이나 재미있는 이름과 꽃말을 품고 있습니다. 잎에 호랑이 문양 같은 얼룩이 있다 하여 '얼레지'라 불리는데, 꽃잎을 뒤로 활짝 말아 올린 파격적인 자태 때문에 '바람난 여인'이라는 발칙한 꽃말도 얻었습니다. 수줍게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도 햇빛 아래서 꽃잎을 뒤집으며 화려한 무희로 변신하는 모습은 볼 때마다 경이롭습니다.


렌즈를 낮추어 눈높이를 맞춰봅니다. 꽃잎 안쪽의 선명한 'W'자 문양은 벌들을 이끄는 길잡이이자, 숲의 정령이 새겨놓은 인장 같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곁을 지키니 비로소 보이는 풍경들. 천진암 가는 길목에서 만난 이 작은 생명은, 기다림 또한 봄을 만끽하는 소중한 과정임을 나직이 일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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