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천왕문의 두터운 문턱을 넘어서자마자, 공기의 결이 순식간에 바뀝니다. 고요한 산사의 침묵을 뚫고, 투명한 향기의 파도가 밀려와 걸음을 멈춰 세웁니다. 보이지 않는 존재감으로 온몸을 감싸 안는 이 아찔하고도 우아한 선율, 바로 서향(瑞香)입니다.



이름 그대로 '상서로운 향기'를 품은 이 꽃은, 봄이 채 당도하기 전 차가운 잔설 속에서도 제 안의 뜨거운 향기를 길러냅니다. 진분홍 봉오리가 터지며 하얀 속살을 드러낼 때, 그 작은 별 모양의 꽃잎들은 옹기종기 모여 앉아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는 듯합니다. 화려한 색감으로 눈을 현혹하기보다, 코끝을 스미는 진한 농도로 자신의 생존을 증명하는 꽃입니다.



사람들은 이 꽃을 '천리향'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향기가 천 리를 간다는 뜻이지요. 하지만 그 천리는 물리적인 거리만을 말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한 번 맡으면 잊히지 않고 마음의 심연까지 깊게 각인되어, 먼 훗날 어느 길목에서 문득 바람을 타고 스치는 비슷한 향기만으로도 오늘의 백양사를, 이 고요한 사찰의 정취를 떠올리게 하는 '기억의 거리'일지도 모릅니다.

"나를 찾지 않아도 그대에게 가리라"는 그 단호하고도 애틋한 꽃말처럼, 서향은 구걸하지 않습니다. 그저 제 자리에서 묵묵히 향기를 빚어낼 뿐입니다. 그러면 바람이 그 마음을 알아채고, 기와지붕 아래 처마 끝으로, 단청의 고운 빛깔 새로, 세상 가장 낮은 곳까지 그 향을 실어 나릅니다.

꽃은 져도 향기는 남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사천왕문 앞을 가득 채웠던 그 은은한 떨림이, 백양사의 깊은 골짜기를 따라 오래도록 머물러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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