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주 수목원 진입로 왼쪽 풀섶, 거친 바위틈 사이에 숨어 피어난 작은 생명들을 만납니다. 척박한 흙더미와 딱딱한 바위 사이, 생명이 뿌리내리기엔 고단해 보이는 그 자리가 복수초에게는 봄을 시작하는 소중한 터전입니다.

밤새 대지는 영하의 기온 아래 차갑게 굳어 있지만, 아침을 포근하게 감싸는 안개는 매서운 겨울 공기를 달래며 봄기운을 불러오는 반가운 마중물이 됩니다. 이윽고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선명한 햇살이 내려앉자, 복수초는 기다렸다는 듯 노란 꽃잎을 열어 따스한 빛을 한가득 머금습니다.

이 작은 꽃을 두고 서양에서는 미소년 아도니스가 흘린 피에서 피어났다는 전설을 빌려 '아도니스'라 부르며 애틋하게 여기지만, 우리네 정서는 조금 더 따뜻하고 넉넉합니다. 이름 그대로 '복(福)과 장수(壽)'를 비는 마음을 담아 복수초라 부르고, 눈 속에서 피어나는 '설연화'나 얼음을 뚫고 나오는 '얼음새꽃'이라는 이름으로 그 강인한 생명력을 예찬해 왔습니다.

꽃말 또한 그런 삶의 이치를 닮았습니다. '슬픈 추억'을 딛고 일어나 '영원한 행복'의 꽃을 피워내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난겨울 우리가 겪은 시린 사연들을 다독여, 이토록 찬란한 노란 빛깔로 틔워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햇살 아래 바위에 이마를 맞대고 활짝 핀 꽃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추위는 이제 다 지나갔다"라고, "지금이 바로 환하게 꽃 피울 시간"이라고 조용히 위로를 건네는 듯합니다. 복수초가 열어젖힌 선명한 노란빛 속에 봄은 시나브로 성큼 다가와 있습니다. 바위틈에서 길어 올린 이 강인한 생명력이 마음속에 오래도록 지지 않을 행복의 씨앗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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