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화창한 정월대보름날 오후 정평천에서 봄의 전령사 갯버들과 봄을 기다립니다.

Chipmunk1 2023. 2. 6. 00:00

2023. 02. 05.

정월 대보름날에 눈 쌓인 냇가에 나가 쥐불놀이 하던 많이 추웠었던 어린 시절 그 느낌처럼 아직도 매서운 추위가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지만, 한낮의 따스한 햇볕아래 아직은 봄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어설프지만, 시냇가의 버들강아지는 두꺼운 겨울 외투를 한 거 풀 한 거 풀 벗어내기 시작한 입춘 다음날, 미세먼지가 꽤나 극성스럽지만, 제법 따스하고 청명한 명실상부 토끼해가 시작되는 정월대보름날 오후,

허물을 벗듯이 벗어놓은 외투 밖으로 드러난 버들강아지의 연하고 하얀 속살 위에 마치 수줍게 암수를 구별하듯 제각각 독특한 붉은색과 검붉은 색 투톤으로 치장을 하고 부지런하게 봄 맞을 채비를 합니다.

머잖아 갯버들 군락 속으로 봄이 조용히 숨어 들어오면,

거역할 수 없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겨울을 뚫고 봄이 시나브로 우리 곁으로 다가오겠지요.

화창한 봄날 같은 파아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갯버들이 나른하게 기지개를 켜는 것은 봄이 그리 멀리 있지 않음을 보여주려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괜스레 봄을 마중하고 싶은 설레는 마음이, 막바지 겨울날, 절기상 조금 이르게 찾아온 정월대보름 오후를 갯버들과 함께 하게 합니다.

오늘도 세상은 여전히 바삐 돌아가고, 이슈를 덮는 이슈들이 줄을 잇고 있지만,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중심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텅 빈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이제야 세상을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한데, 이제는 너무 늦어 하릴없이 세상의 뒤편 언저리에 서서 속절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바라만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중심에 내가 없어도 변함없이 잘만 돌아가고 있습니다.

고로, 긴 호흡 한번 한 후, '이제부터는 모든 걸 다 내려놓고 오로지 너만을 위한 너만의 이기적인 삶을 살아도 된다'라는 신의 계시로 알아듣고, 정월대보름 오후에 여전히 살얼음이 남아있는 시냇가에 서서 갯버들꽃이 만개할 희망의 봄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