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과 폭설속에서도 의연하게 움트는 봄의 전령사들을 대하는 나의 단상(斷想)
체감온도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혹한기임에도 불구하고, 산당화(명자꽃)는 입춘을 십일 남겨놓고 피 끓는 젊음의 화신 같은 정염(情炎)의 빨간 꽃망울을 매혹적으로 맺고 있습니다.
이십일 전쯤 제주의 한라수목원에서 활짝 폈던 봄의 전령사 매화도 올겨울 최고 낮은 기온임에도 아랑곳 않고 입춘에 맞춰 개화할 채비를 서두르는 듯싶습니다.
늦여름부터 가을지나 겨울까지도 열정적인 빨간 빛깔을 지켜내는 산수유 열매가 채 떨어지기도 전에 노란 꽃망울이 조금씩 속살을 들어내면서 연일 이어지는 혹한 속에서 의연하게 봄을 기다립니다.
하나둘씩 뽀얀 솜털에 쌓인 백목련 몽우리가 매서운 강추위 속에서도 송곳송곳 봄마중 채비에 바지런을 떨고 있습니다.
어쩌면, 입춘을 코앞에 두고 몰려온 한파와 폭설이 계절의 흐름을 역행하는 훼방꾼이라기보다는, 그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계절의 바람둥이 난봉꾼이 아닌가 싶은 것은, 계절을 이기는 장사가 없듯이, 늦여름의 험상궂은 태풍도 한겨울의 매서운 한파도 계절의 흐름을 결코 바꿔놓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세월을 되돌아보건대, 나는 새도 떨어뜨릴법한 세도도 유효기간이 지나니 추풍낙엽이 되고, 음지를 떠돌던 소외된 영혼도 어느 순간 삭풍에 편승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기고만장해서 오만 방자해지는 것이, 어찌 보면 바람 속의 티끌 같은 인생이 영원하리라는 착각의 늪이 얼마나 인간을 깊은 수렁 속의 불치병에 이르게 하는지 짐작케 합니다.
눈 섞인 이른 봄부터 개화를 시작하는 산당화가 진눈깨비와 봄비를 수없이 맞으며 한여름에 파란 열매를 맺고, 겨우내 짧은 해에 단련되고 농익는 인고의 세월을 이겨내고 탐스런 황금빛 열매로 거듭납니다.
늦은 겨울 내린 눈이 노란 꽃망울 위에서 녹았다 얼었다를 반복하며 봄의 한가운데서 만개해서 뜨거운 여름을 지나 황금들녘 가을에 탐스런 빨간 열매를 맺어 사람손이 타지 않는 외진 땅 위에서 혹한 속의 폭설을 거뜬히 이겨내고,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을 당당하게 응시하며 메마른 가지에 매달려있는 검붉은 열매가 바람에 못 이기고 땅에 떨어져 조금씩 말라가며, 커다란 변화 없이 계절의 흐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산수유의 경박스럽지 않은 당당함이 있는 그대로 읽힙니다.
계절에 순응하여 티끌만큼의 의심도 없이, 봄이 오리라는 확신을 갖고 개화를 준비하는 산당화(명자꽃), 매화, 산수유, 그리고 목련등과 같이 순간의 혹독한 시련에도 결코 굴하지 않는, 언제나처럼 여행길 위 나그네의 삶을 지향하며, 잠시 찾아온 혹한과 폭설을 담대하게 견뎌내며 오늘도 소풍 같은 인생길 위에 초연히 서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