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눈 덮힌 안동호반 나들이길에서 화이트 크리스마스 오후를 보낸 나의 단상(斷想)

Chipmunk1 2023. 1. 3. 06:00

2022. 12. 25.

안동시 승격 50주년을 기념해서 2013년 12월에 준공됐다는 안동호반 나들이길을 준공된 지 9년 만에 제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에서 호반의 도시로 거듭난 안동의 호반 나들이길에서 이렇게 역대급으로 많은 눈이 덮인 길을, 그것도 성탄절 오후에 걸어보는 이색적인 경험을 하게 되리라고는 안동에 도착해서 낙동강변로를 거쳐 안동댐 아래 낙강물길공원을 경유해서 안동민속박물관 앞에 주차하고, 강변 데크길을 걷기 시작해서 월영교를 지날 때 까지도 미처 인지하지 못했다.

호반 나들이길 안내 간판과 준공기념표지석에서 부터 시작된 데크길 트레킹은 아이젠을 장착하지 않은 회한(悔恨)을 품은 채로 등산 스틱도 없이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인적이 드문 눈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월화정에 이르렀을 때, 안동이 진정한 한국을 대표하는 정신문화의 수도라고 자부할만하다는 안동의 자긍심에 한 표를 던졌다.

월화정 마루에 오를 때 신발을 벗으라는 안내문에 걸맞게, 어린 시절 방을 쓸었음직한 빗자루가 나무기둥에 걸려있었고, 현대식 물걸레 하나는 바닥 한편에 가지런히 누워있었고, 다른 하나는 빗자루가 걸려있는 왼편 기둥에 질서 있게 매달려있었다.
그 누구라도 신발을 벗지 않고 오를 수 없도록 환경을 잘 마련해 놓은 듯싶었다.
물론, 외국어(예를 들자면 영어) 안내 문구가 빠져있음이 아쉬웠다. 지난가을 제주 서귀포 카멜리아힐의 동백나무 곁 정자에도 한글로 신발을 벗고 올라가라고 쓰여있었지만, 서양에서 온듯한 여성 한 명이 버젓이 신발을 신은 채 혼자 올라가 사진을 찍던 모습을 보면서 말로만 세계 속의 한류라 할 것이 아니라, 한류를 찾아오는 많은 외국인 관광객들이 신발을 벗고 실내 생활을 하는 한국의 전통문화도 체험할 수 있도록 안내문 하나에도 정성을 기울였으면 좋지 않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월화정을 한참 지나 그림같이 하얀 눈이 덮인 호반 나들이길에서 뉘엿뉘엿 넘어가는 성탄절 오후를 지나는 눈부신 해를 뒤로하고 어느새 시야에서 멀어진 월영교를 향해 종종걸음으로 어둠이 내리기 전 호반 나들이길의 출발점으로 안전하게 회귀했다.

안동의 랜드마크 월영교를 지나 원이엄마테마공원이 끝나는 부분에서 시작되는 호반나들이길에서 우연히 함께 한 화이트 크리스마스는 오래도록 기억 속에서 색다른 추억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