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보고 빠져들었었던 청송 주왕산 주산지의 한겨울을 대하는 나의 단상(斷想)
2022. 12. 28.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란 영화가 세상에 나온 지도 거의 20년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영화를 만든 감독이 초라하게 타국에서 은둔 생활을 하며 세인들의 기억에서 사라질 즈음, 씁쓸하게 타계한 지도 두 해가 훌쩍 지났다.
정말이지,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데없네'라는 야은 길재의 시구가 절로 떠오른다.
그리고, 주왕산의 주산지가 이제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명승지(2013년, 105호)로 지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어엿하게 대한민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에 들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지만, 경상북도 청송의 주왕산 깊은 골짜기에 축조된 지 300년 남짓된(1720년, 조선 숙종, 8월) 아담한 인공 저수지로, 한반도에 축조된 수많은 저수지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기에, 세상에 주산지를 널리 알린 영화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2003년 김기덕 감독)의 홍보효과를 톡톡히 본 덕분이 아닌가 싶다. 만일, 고인이 된 김기덕 감독이 세태의 잣대에 맞춰 잘 살았더라면, 제주 비양도에 세워진 '드라마 봄날 촬영지' 같은 기념비가 사후에라도 세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따라서,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왕버들이 스무 그루 정도 저수지에 듬성듬성 심겨 있을 뿐인데, 사계절을 너무나도 아름답게 담아낸 영화감독의 탁월한 선택 덕에 청송 주왕산의 주산지가 유명세를 떨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싶다.
십분 정도면 충분히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의 아담한 저수지가 그리워서 안동이나 청송 근처에 오면, 습관적으로 다녀가는 곳이 되어버렸으니, 나에게 있어서 주산지는 어떤 특별한 매력이라도 있는 건지 내게 뜬금없이 물어본다.
고백컨데, 영화를 보기 전까지만 해도 청송 주왕산에 주산지라는 저수지가 있었는지 조차 몰랐었고, 영화에서 표현된 아름다운 풍경에 매료되지만 않았더라도, 교통도 불편한 후미진 곳을 일부러 찾아올 일이 만무하지 않았을까 싶다.
세상의 이치가 어찌 보면, 영화라는 잘 포장된 영상에 이끌려 촬영장소를 찾게 되는 것처럼, 보잘것없는 그 무엇도 잘 포장하고 그럴듯한 광고 카피를 만들어 홍보만 잘한다면, 훌륭한 명품이 될 수도 있음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익히 잘 알고 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세상에도, 그렇게 잘 포장된 함량미달 인간들이 득시글 대고 있으니(특히 정치판에), 세상이 아주 자주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하기사,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흘러왔고, 또 그렇게 흘러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하루를 살더라도, 맘 편히 분수에 맞게 안분지족 하면서, 비정상적인 유혹에 흔들림 없이 부화뇌동하지 않고, 세속의 기준으로는 바보 같고 모자라 보일지는 몰라도, 내 나름의 멋들어진 삶을 그냥 유유자적하며 살아내는 것도 그리 나쁜 삶은 아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