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내장산 우화정과 내장사에 2022년을 두고 오다
2022. 12. 31.
2022년 마지막 날 새벽 4시 조금 넘은 경부고속도로와 천안 논산고속로와 호남고속도로를 막힘없이 거침없이 시원하게 내달렸다.
근래 들어 보기 드문 폭설로 말미암아 상당기간 입산금지되었다가 겨우 통행이 재개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너무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오전 7시 막 지나서 도착한 내장산국립공원 매표소 직전 도로는 아직도 통행을 금지한다는 빨간 위험표지판이 세워져 있기에 다리 건너 적당한 공터에 주차를 하고, 아무도 없는 듯 보이는 정문을 지날즈음, 뒤쪽에서 인기척이 나기에 뒤돌아보니, 매표소 뒷문으로 매표소 관리인 인듯한 사내가 쳐다보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서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고 말하고 겸연쩍어하는데, 그냥 들어가시라고 한다.
꾸벅 인사하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데크로 만든 인도는 눈이 쌓여 걷기가 힘들듯 하여, 눈이 치워진 도로 위를 거침없이 삼십 분 정도 걸어 우화정에 도착했다.
겹겹이 쌓인 눈 위를 밟아 길을 만들어가며, 우화정이 있는 꽁꽁 얼어버린 연못을 한 바퀴 돌면서, 계절마다 다른 모습으로 의연하게 서 있는 우화정의 지붕이 한 겹 더 눈으로 골고루 뒤덮여서 마치 하얀 기와를 새로 올린 듯 아름다웠다.
겨울의 해 뜨는 위치가 우화정 오른쪽 산 위로 옮겨지는 바람에 우화정 지붕 위로 뜨는 해도 볼 수 없었지만, 우화정 입구 징검다리 오른쪽은 아직 얼지 않은 물이 남아있어 아침노을과 구름과 파란 하늘이 우화정 앞에 투영되어 나름 아름다운 아침 풍경을 흡족하게 그려내고 있었다.
일주문을 지나 아기자기한 내장사 가는 길 위에서 마치 속세를 떠나는 수도승의 심정이 되어 지난 한 해를 뒤돌아보고, 부모님 은혜 시비가 있는, 사람들의 발길이 나 있지 않은 눈 위를 푹푹 빠져가며 잠시 부모님을 생각하고, 다리를 건너 천왕문을 지나고 정혜루를 지나니 경내 중앙의 큰 법당이 조촐하게 서 있었다.
몇 해 전 어처구니없는 방화로 전소된 대웅전 터에 임시 가 건물 형태로 세워놓은 초라해 보이는 큰 법당이 빠른 시일 내에 화려하지만 절제된 단청이 돋보이는 예전 대웅전으로 거듭나기를 소망해 본다.
눈이 두껍게 쌓인 경내를 한 바퀴 둘러보고, 정혜루와 천왕문 사이의 연못을 지나 천왕문 밖의 겨우 한 사람이 지날 정도의 길을 제외하고는 무릎 높이 까지 쌓인 눈으로 된 오솔길을 걸어 2022년 마지막 날 아침, 다사다난이란 말로는 이루 다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떠올리며, 안일하고 무능한 위정자들의 끊임없는 권력놀음과 줄 서기에만 열중하는 권력의 하수인들이 합작으로 반복되고 있는, 지킬 수도 있었던 소중한 생명들을 잃어버리는 안타까운 인재가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내장산의 우화정과 내장사에, 가슴 아팠던 2022년의 슬픈 역사를 맡겨놓고 2023년의 희망이 될 사랑만 조용히 데리고, 2023년의 문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