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이야기

큰사슴이오름 앞마당은 억새풀의 무도회장

Chipmunk1 2022. 11. 9. 08:53

2022. 11. 03.

쫄븐갑마장길을 간다고 나선 길이었는데, 유채꽃프라자카페에서 따뜻한 유자차 한잔을 마시고, 카페 뒷켠에 펼쳐진 큰사슴이오름과 작은사슴이오름 사이 너른 들판의 바람에 흔들리는 은빛 억색풀에 매료되어, 4년전 이맘때쯤 비내리는 쫄븐갑마장길을 걸으면서 큰사슴이오름은 쫄븐갑마장 한바퀴 돌고 오르겠다고 마음 먹었지만, 가을비가 심상치않아 쫄븐갑마장길만 걷고 말았었는데, 오늘은 날씨가 정말 화창했고, 태양도 따뜻하게 억새풀밭을 비춰주니 큰사슴이오름 억새풀밥에서 놀기에는 금상첨화가 따로없었기에, 쫄븐갑마장길은 이정표만 보고 오늘은 큰사슴이오름 억새풀의 매력에 매료되어 가을을 만끽했다.

억새와 거대한 풍력발전기의 느릿하지만 바람의 성화에 멈추지못하고 날개짓을 하는 뒷편에는 나즈막한 오름들과 바다가 옅은 구름띠를 두른채 아련하게 억새풀들의 손짓에 화답이라도 하듯, 서서히 저녁노을이 수줍게 나타나니, 억새풀과 바람과 새소리가 가득하고 한가로이 풍력발전기가 돌고있는 큰사슴이오름은 예전에 살았다던 사슴이 금새라도 아름다운 풍경속의 주인공처럼 나타날것만 같은 먼진 자연의 풍광에 넋을 잃는다.

파란 가을하늘아래 은빛 물결이 파도치듯 이리저리 흔들리는 억새풀이지만, 꺽일듯 꺽이지않고 바람에 순응하는 모습에서 지나온 삶이 재조명된다.
어떠한 바람에도 흔들리지않겠다던 젊은 시절의 정의로움(?)이, 억새풀의 꺽일듯 꺽이지않는 유연한 몸짓을 보면서, 나의 젊은 시절의 시간들이 정말 정의롭기만 했었을까 반문해 본다.
그래!
부러지지만 않는다면, 휘어질대로 휘어졌다가 바람이 잔잔해지면 다시 꼿꼿하게 서는 억새풀 처럼, 이제는 세상을 좀더 융통성있게 바라보고 부드럽게 살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