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야기

탄천의 신사, 목에 두른 하얀 약속

Chipmunk1 2026. 2. 23. 07:15

​겨울 끝자락의 탄천, 윤슬이 부서지는 물길 위로 초록색 투구를 쓴 신사가 나타납니다. 사람들은 그를 '청둥오리'라 부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는 누구보다 멋을 아는 탐험가입니다.

​그의 가장 큰 매력은 단연 목에 두른 선명한 하얀색 띠입니다. 마치 정갈한 셔츠 깃을 세운 듯, 혹은 소중한 이에게 줄 반지를 목에 걸어둔 듯한 그 하얀 링은 오직 수컷만이 가질 수 있는 훈장입니다. 화려한 초록빛 머리와 대비되는 이 하얀 선은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물 위의 풍경에 명확한 경계를 그어줍니다. 반면, 곁을 지키는 암컷은 화려함 대신 주변 풍경과 닮은 갈색 깃털을 택해 생명의 소중한 온기를 지켜내지요.​그들의 유영은 서두르는 법이 없습니다. 수면 위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평온한 표정으로 물결을 타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부지런히 발을 놀리며 삶의 균형을 잡습니다. 때로는 엉덩이를 하늘로 치켜들고 물속 깊은 곳의 먹이를 찾는 익살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이는 그들이 탄천이라는 터전을 얼마나 깊이 신뢰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번식기를 앞두고 더욱 짙어진 그 하얀 목걸이는 어쩌면 다가올 봄에 대한 약속일지도 모릅니다. 차가운 물살을 가르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는 그 뒷모습에서, 우리는 계절을 견뎌내는 법과 스스로를 아름답게 가꾸는 마음을 배웁니다.

​오늘도 탄천의 신사는 하얀 링을 반짝이며 흐르는 시간 위를 유유히 지나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