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乙巳年) 납월(臘月)의 만월, 허기진 가슴에 내리는 눈꽃 달빛
(어둠 속의 첫 마중)-30배 줌

을사년 섣달(납월)의 마지막 보름달이 떴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이 달은 서구권에서 '스노우 문(Snow Moon)'이라 불립니다. 2월의 대지에 가장 많은 눈이 내리는 시기, 달빛마저 하얀 눈가루를 뒤집어쓴 듯 시리도록 맑기 때문이지요. 첫 셔터를 누를 때, 달은 마치 수줍은 고백처럼 어둠 속에서 조심스레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헝그리 문의 전설)-40배 줌

달이 조금 더 선명해지자 해묵은 전설이 떠오릅니다. 북미 원주민들은 이 달을 '헝그리 문(Hungry Moon)'이라고도 불렀습니다. 사냥감은 숨어들고 식량은 바닥나던 혹독한 겨울의 끝, 굶주림 속에서 바라본 저 달은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간절하고도 원망스러운 존재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배고픈 시선이 있었기에 달빛은 더욱 생생하게 가슴을 파고들었겠지요.
(차가운 공기와 뜨거운 빛)-50배 줌

시간이 흐를수록 달의 무늬가 층층이 살아납니다. 차가운 겨울 공기는 렌즈 사이를 파고들지만, 달이 내뿜는 은빛 에너지는 오히려 뜨겁습니다. 헝그리 문이라는 이름 뒤에는 '함께 나누어 시련을 견디자'는 인고의 마음이 숨어 있습니다. 텅 빈 곳간을 대신해 하늘 가득 차오른 풍요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을사년의 갈무리)-60배 줌

섣달 혹은 납월(臘月)은 매듭의 시간입니다. 달은 점점 더 몸집을 불리며 지난 일 년의 기억들을 하나둘 불러 모읍니다. 기뻤던 찰나와 아쉬웠던 눈물자국들이 달의 크레이터처럼 촘촘하게 새겨져 있습니다. 스노우 문의 순백은 그 모든 얼룩을 덮어주는 대자연의 용서와도 같습니다.
(절정으로 치닫는 은빛)-70배 줌

다섯 번째 기록에 이르러 달은 비로소 완전한 왕관을 씁니다. '스노우 문'이라는 이름답게, 대지에 내리지 못한 눈들이 모두 저 달 속으로 빨려 들어간 듯 눈부신 화이트 밸런스를 보여줍니다. 배고픔과 추위를 이겨낸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고귀한 광휘입니다.
(비움 뒤에 오는 채움)-80배 줌

헝그리 문이 상징하는 '비움'은 결국 새로운 봄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입니다. 위장이 비워질 때 영혼이 맑아지듯, 섣달의 마지막 달빛 아래서 우리는 욕심을 내려놓습니다. 사진 속 달은 마치 "이제 곧 눈이 녹고 싹이 틀 것"이라고 속삭이는 듯합니다.
(영원히 잊히지 않을 7분의 기록)-90배 줌

오후 8시 42분부터 49분까지, 짧은 7분 동안 을사년의 마지막 신화를 기록했습니다. 굶주림(Hungry)을 견디고 눈(Snow) 속에서 피어난 을사년 마지막 보름달은, 우리 삶의 가장 추운 계절조차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음을 증명합니다.
(마침표 - 다시, 시작)-100배 줌

이제 을사년(乙巳年)의 마지막 보름달이 기울고 나면 우리는 진짜 봄을 만날 것입니다. 그리고, 스노우 문의 온기를 가슴에 품고,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습니다. 허기진 마음을 달빛으로 가득 채운 오늘 밤, 나그네의 스마트폰에 담긴 저 달은 영원히 지지 않는 희망의 증표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