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이야기

창덕궁 선정전 청기와

Chipmunk1 2026. 2. 3. 05:00

2026. 01. 14.

(가장 화려했으나 가장 외로웠던 공간)

창덕궁의 다른 건물들이 검은색 기와로 단정하게 머리를 맞대고 있을 때, 선정전은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손님처럼 푸른빛을 발산하며 서 있습니다. 그 생경한 푸른빛은 보는 이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겪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갈등이 고스란히 읽힙니다.

광해군의 집착에 가까운 토목 사업의 결과물이었던 '인경궁'의 청기와가, 인조반정 이후 이곳으로 옮겨져 선정전의 지붕이 되었습니다. 무너진 왕조의 화려함을 빌려와 현재의 정무를 돌보던 왕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가장 귀한 안료인 회회청을 발라 구운 이 기와는 왕의 권위를 상징했지만, 동시에 사치를 경계하던 유교 국가 조선에서는 늘 비판과 논란의 중심에 서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선정전의 청기와는 화려하지만 들떠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차갑고 서늘한 푸른색이 왕의 어깨에 놓인 책임의 무게를 닮아 있습니다. 비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 복도각을 따라 걸으며 국사를 고민하던 왕에게 저 청기와는 아마도 자신이 지켜내야 할 '푸른 하늘'의 상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선정전의 푸른빛은 단순히 아름다운 색채에 그치지 않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영광과 오욕을 모두 짊어진 채, 묵묵히 시간을 견뎌온 역사의 증거입니다.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 고요한 외로움을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선정전의 진짜 얼굴을 보게 됩니다.

(푸른 꿈의 처마)

비바람에 씻겨 내려간 세월 속에
홀로 푸른빛을 머금은 지붕이 있다

검은 기와들 사이 낯설게 핀 청색 꽃은
임금의 고뇌를 덮어주던 하늘이었을까
인경궁의 화려한 잔해를 끌어안고
다시 일어선 어느 왕의 무거운 결심이었을까

햇살이 법화(法華) 유약에 부딪쳐 산산조약 날 때
그 아래 복도각을 걷던 정직한 발소리들
나라의 명운을 논하던 뜨거운 숨결은
이제 서늘한 기와 한 장에 박제되어 있다

눈 덮인 고궁의 적막 속에서
선정전은 여전히 홀로 푸릇하다
백성의 고혈이라 꾸짖던 신하의 목소리도
왕의 위엄을 세우려던 욕망의 끝도
저 서슬 퍼런 처마 끝에 고드름으로 매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