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 우화정과 내장사에 2023년을 맡기고, 2024년 새해를 맞으러 갑니다.
2023. 12. 30.
이제는 2023년과 작별을 나눌 시간입니다.
마지막 날 갔었던 작년과는 달리 하루 일찍, 내장산국립공원의 우화정과 내장사에 가는 해를 잘 맡겨 놓으러 갔습니다.
우화정처럼 하늘을 날 수 있는 날개가 돋아날까 싶어 무작정 우화정으로 달려가 용을 쓰며 홀로 송년회를 해보지만, 날개는커녕 눈길에 살짝 미끄러지며, 중심을 잡으려 땅바닥을 짚은 왼쪽 팔에 통증이 몰려옵니다.
일주문을 지나, 눈이 거의 쌓이지 않은 내장사 가는 길의, 겨울 답지 않은 낯선 풍경에 어리둥절하며, 잠깐 사이 천왕문을 지나 정혜루도 지나 경내로 들어섭니다.
여전히 수년 전 어이없게 화마가 앗아간 대웅전 자리에는 창고 같은 임시 글씨만 큰 법당인 대웅전을 대신하는 자그마한 법당이 나그네를 슬프게 합니다.
어디를 둘러봐도, 대웅전 신축에 대한 안내문은 없고, 대웅전 신축에 필요한 시주에 관한 안내문만 보입니다.
어엿한 대웅전이 다시 들어서기까지는 아직도 요원하겠다 싶습니다.
잠깐사이 태우기는 쉬워도, 다시 신축하는 일은 너무도 힘든 일이기에, 다시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천년고찰을 훼손시키는 일이 없도록, 빠른 시일 내에 신축 도감이 나오기를 학수고대하면서, 새해에는 부처님의 자비로 대웅전이 다시서는 원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천왕문과 정혜루 사이의 작은 연못에 아름답게 투영되는 내장사와 주변의 산과 불사가 한 폭의 산수화를 만들어내기에, 한참을 서성이며 뇌리에 담아봅니다.
내장사를 나와서, 다시금 우화정에 마음을 빼앗기고, 혹시나 해돋이를 볼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설렘으로 우화정 연못을 한 바퀴 천천히 돌아봅니다.
아침해가 넘어올 듯 넘어올 듯 변죽만 울리다가 하릴없이 아침 해돋이는 거의 포기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천천히 한 바퀴 더 돌아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바퀴 더 돌아본 뒤, 미련을 과감하게 떨쳐버리고, 내장사와 우화정에 2023년을 잘 맡기고 2024년을 맞으러 떠납니다.
어쩌면, 금년에는 마지막으로 볼지도 모르겠다는 조바심이 구름들과 숨박꼭질 중인 달을 몇 컷 담아봅니다.
이제 곧 새해가 시작됩니다.
힘들었던 지난날들의 나쁜 기억들은 모두 2023년과 함께 우화정과 내장사에 맡겨놓고, 청룡의 강건하고 수려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 만사형통 무탈행복한 새해가 되기를 소망하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