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배롱나무 꽃이 만개한 병산서원의 여름 풍경

Chipmunk1 2023. 8. 11. 12:13

2023. 08. 06.

안동시 풍천면 병산리의 병산서원은 복례문 안팎이 온통 배롱나무 꽃으로 뒤덮여 한 여름을 울긋불긋 화려하게 수놓습니다.

무려 사백 년을 훨씬 넘긴 다섯 그루의 배롱나무가 병산서원 본건물 뒤꼍에 보호수로 지정되어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초여름에 해충들이 극성을 부리니, 안동시청 공무원들이 살충제를 듬뿍 뿌렸다 하는데, 너무 독한 살충제를 살포했는지, 개화도 늦었을 뿐만 아니라, 예년에 비해 꽃이 빈약해 보이지만, 사백여 년의 풍파를 겪어낸 나무들인지라, 별 탈 없이 여름을 지나는 듯싶어 천행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입신양명한 관리들이 관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궁궐을 드나드는 모습이 마치 닭의 벼슬과 같다 하여 벼슬아치라 불렀다는 속설이  있는데, 배롱나무 꽃이 닭의 벼슬 같이 생겼다 하여, 입신양명을 위해 공부하는 선비들의 성공을 기원하는 의미에서 심었다는 배롱나무는 임금의 색을 상징하는 붉은색은 입신양명하여 임금님께 충성을 다한다는 의미로도 해석되었다 하니,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킬러문항에서 시작된 입시카르텔이라 지칭되는 이권집단들이 지금이나 옛날이나 일류학교, 일류학원의 일타강사를 찾아 입신양명을 꾀하는 백성들의 노력은 변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다만, 지금은 돈과 권력이 양반이니, 엄선된 선비들이 서원에서 학문을 갈고닦던 시절과는 다소 차이가 있겠지만, 입신양명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극성은 변함이 없지 않나 싶습니다.

복례문과 만대루 사이에 만들어 놓은 작은 연못 광영지(光影池)는 선비들이 공부에 지쳐 마음에 동요가 생기면 찾아와 마음의 안정을 찾고, 다시금 학문에 정진할 수 있게 하는 마음의 안식처였다 하니, 이 또한 선비들의 입신양명을 위한 서원의 내부 시설 중의 하나였다 할 수 있겠지요.

누군가에 의해 오래전에 식재된 듯한 복례문 앞의 묘목들이 마치 과거에 급제한 선비들이 도열해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여름의 병산서원은 배롱나무 꽃을 제외하고는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복례문 밖에서 바라본 병산서원은 울긋불긋 세상에서 제일가는 한여름 꽃대궐의 진수를 보여줍니다.

무더운 한 여름은 예나 지금이나 공부에 전념하기에 힘든 시기가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에어컨이 있으니  무더위 속에서 공부하기에 예전보다는 많이 수월하겠지만, 여름휴가다 뭐다 많은 유혹들을 이겨내기는 결코 쉽지는 않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날 선비들은 무더위에 지친 심신을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뻗어 피는 배롱나무 꽃을 보면서 입신양명의 꿈과 희망의 끈을 부여잡고 학업에 열중했지 싶습니다.

서원의 본건물 대청마루 건너편 세 개의 쪽문을 통해 보이는 사백여 년 된 뒤꼍의 배롱나무가 오랜 세월 나쁜 기운을 멀리하고 좋은 에너지를 선비들에게 전해주니,  이 또한 학문에만 전념하도록 한 서애 유성룡 선생의 깊은 뜻이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것은 아닌가 싶습니다.

한 달 전, 서해 선생의 정신을 배우러 병산서원을 찾았다던 현역 해군 병사들을 만났던 일들이 불현듯 생각납니다.

세월의 굴곡을 가늠케 하는 하늘 높이 뻗은 배롱나무 줄기와 오랜 세월 피고 지기를 반복해 온 배롱나무 꽃을 보면서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치 않는 진리가 있다면, 바로 세상에 태어나 입신양명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각박하게 살아왔고, 살고 있고, 살아갈 거라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바로 그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병산서원을 빠져나오며 길 모퉁이의 보랏빛 배롱나무 꽃을 보면서,  배롱나무는 몽땅 붉은색 꽃만 피는 것이 아니라 하얀색꽃도 피고, 보라색꽃도 피지만, 배롱나무 꽃은 붉은색이 대세이고, 붉은색 배롱나무 꽃이 입신양명의 대명사이기에, 입신양명과는 거리가 먼 나그네는 하얀색 배롱나무 꽃이거나 보라색 배롱나무 꽃이 아닌가 싶은 생각에 쓴웃음을 지으며 굽이굽이 병산서원 길을 돌아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