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이야기
장마 중에도 활짝 핀 범부채를 대하는 나의 단상(斷想)
Chipmunk1
2023. 7. 15. 02:22
호랑이 무늬를 한 여섯 개의 꽃잎이 무더위를 쫓으려는 듯 시원하게 펼쳐진 부채를 연상시키는 범부채가 깊어가는 여름의 지루해진 장마 속에서 나 보란 듯 활짝 피었습니다.
밤새 오므리고 있던 범부채 꽃잎들이 늦은 아침이 되어서야 게으른 잠꾸러기들이 마지못해 털고 일어나듯 서서히 열기 시작합니다.
다행인지는 몰라도, 범부채의 꽃잎들은 밤바람에는 다소 흔들릴지언정 밤비 때문에 고통받는 일은 없을 듯합니다.
밤새 내리던 비가 잠시 쉬어가는 여유로운 아침이 되면, 기다렸다는 듯이 오므리고 있던 꽃잎을 여는 범부채가 언제 비와 왔었나 싶게 해맑은 얼굴로 활짝 웃어줍니다.
여섯 개의 꽃잎은 각기 다른 크기와 길이가 부드럽고 조화로운 곡선을 이루며, 조금씩 색다른 호랑이 무늬의 단장을 하고 지루해진 장맛비가 연출하는 음습한 한 여름의 축축해진 분위기를 한층 밝게 만들어 줍니다.
야리야리해 보이는 줄기에 올망졸망 매달린 꽃들이 비바람에 꺾이어 땅바닥에 입맞춤하고 있는 모습마저도 아름다운 범부채와 함께하는 여름도 시나브로 정점을 향해 치닫는 막바지 장마가 지나고 나면 한동안 폭염 속에서 몸살을 하다가 서서히 범부채와 함께 우리 곁을 떠나겠지요.
축축한 장마와 불가마 같은 폭염도 아랑곳 않고 무덤덤하게 피고 지기를 여름 내내 반복할 범부채의 호연지기를 벗 삼아 눈만 뜨면 불안하고 초조한 가엾은 영혼들에게도 평안하고 무탈한 크리스마스 선물 같은 여름이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